
Nomad
Nomad (다가구 주택)
하나의 단위 공간에 여럿이 모여 사는 도시의 주거 형식으로 개발된 것이 다가구주택이다.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다세대주택과는 달리 임대형식으로 점유되는 다가구형식은 가장 소규모의 공동주택이다. 학생과 회사원 등의 독신자 또는 맞벌이 신혼부부 등이 단계적인 생활패턴의 변화과정 중에서 어느 기간만을 사는 곳으로 다가구형식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비록 잠시일망정 소유하는 것과 빌리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필요하다면, 여건만 된다면 언제든지 옮겨갈 수 있다는 조건은 현대의 도시가 갖는 속성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전혀 예정되지 않았던 우연의 모임, 닮은 것보다 다른 것이 더 많은 개인들의 집합에서 어떤 모습의 공동체가 만들어 질 것인지 못내 궁금하다. 전통적인 공동체와 현대적인 공동체는 무엇이 다르며 그 중에서도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단독 가구의 공동체는 또 어떤 것 일지를 헤아리기 힘들다. 도시적인 익명성에 면역이 된 것처럼 그것을 오히려 편하게 즐기려는 현대적 심리와 하나의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인연이 될 수 있다는 전통적 규범의 갈등 속에서 건축이 무엇을 하여야 할지 정말 막막하다. 문을 닫으면 프라이버시가 만들어지고 마당을 만들면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그런 단순해법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다양한 메커니즘과 한정된 공간을 만드는 건축과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정해지지도 않은 입주자의 성격들을 앞질러 가상할 수도 없는 일이며, 그 사이에서 일어날 앞으로의 상황을 예상하기는 더욱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짐작 가능한 것은 제공된 공간에 공감하는 수요자가 그것을 선택하게 괼 것이라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막연한 것이어서 결국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과 같이 사장형성의 원리에 맡기는 불안함은 여전히 남는다. 대단위 아파트와 같이 어느 정도의 유형을 예측할 수 있는 경우와는 달리 소규모의 공동체 모양을 미리 짐작하리란 쉽지 않다.
열다섯의 유니트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에 적용된 건축적인 장치는 길 뿐이다. 공동의 공간이라든가 시설은 아무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하와 주차장과 4층까지 이어주는 길게 늘어진 계단과 복도가 있을 뿐이다. 유니트들은 길을 따라가며 각각의 입구를 갖게 된다. 최단의 거리로 이루어진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동선이 아니라 늘릴 수 있을 만큼 늘려 놓은 비합리적이고 비기능적인 기다란 길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고 바람이 불면 추위를 느껴야 하는 보통의 길과 다르지 않다. 예정되지 않았던 모임에 의도적인 장치를 두어 어색해 하는 것보다 길에서 마주칠 자연스러운 우연의 발생을 준비하여는 것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동안 한 번 정도 이웃과 마주칠 자연스러운 우연의 발생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동안 한번도 이웃과 마주치지 않는 경우와 아니면 매일 함께 걸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이 우연으로 끝나거나 그것이 필연으로 마무리 되거나는 그들에게 맡겨질 것이다. 이런 경우에 건축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장소와 시간과 그로 인한 상황을 제공하는 것, 그것뿐이다. 더 이상 욕심을 낼 수도 없다. 그들이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낼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도 없다. 주어진 조건과 역할을 맡은 불특정한 주인공들에 의해 그때그때에 적절한 각본이 만들어지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속모양이지 않은가.
Nomad (다가구 주택)
열다섯의 유니트로 이루어진 작은 공동체에 적용된 건축적인 장치는 길 뿐이다. 유니트들은 길을 따라가며 각각의 입구를 갖게 된다. 최단의 거리로 이루어진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동선이 아니라 늘릴 수 있을 만큼 늘려 놓은 비합리적이고 비기능적인 기다란 길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고 바람이 불면 추위를 느껴야 하는 보통의 길과 다르지 않다. 예정되지 않았던 모임에 의도적인 장치를 두어 어색해 하는 것보다 길에서 마주칠 자연스러운 우연의 발생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동안 한 번 정도 이웃과 마주칠 자연스러운 우연의 발생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이곳에 거주하는 동안 한번도 이웃과 마주치지 않는 경우와 아니면 매일 함께 걸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이 우연으로 끝나거나 그것이 필연으로 마무리 되거나는 그들에게 맡겨질 것이다. 이런 경우에 건축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장소와 시간과 그로 인한 상황을 제공하는 것, 그것뿐이다. 더 이상 욕심을 낼 수도 없다. 그들이 어떤 공동체로 만들어 낼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도 없다. 주어진 조건과 역할을 맡은 불특정한 주인공들에 의해 그때그때에 적절한 각본이 만들어지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속모양이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