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ium

느리움(neurium)

느리움은 헤이리 한 귀퉁이에 있다. 수년 전 헤이리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오롯이 건축을 위한 무대였는데 시간이 지나며 날로 번잡해지고 분주한 곳으로 변했다. 찾는 이가 많아지고, 즐길 거리가 많아지는 것은 이곳을 방문해 즐기는 이들과 살며 가게를 꾸리는 이들에게는 기쁜 일이겠으나, 이곳에 공간을 만들려는 이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다.

번잡하고 소란한 이웃으로부터 자신을 안온하게 위치하는 방법은 사이를 만들어 주변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빠듯한 경계를 풀어 느슨하고 넉넉한 경계를 만들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

두 갈래 길로 갈라지는 모서리 땅이니, 둥글게 돌아 나가는 땅 모양을 따라 넓게 벽을 둘러치되, 등기상으로 유효한 면적은 하나로 모아 가운데 두고 그로부터 사이를 만드는 또 한 겹의 가벽을 두어 폭넓게 공간을 품었다. 둘러친 가벽에는 3층까지 오르는 계단을 길게 걸어놓아 느린 동선을 만들었다. 공간을 품고 기능까지 더한 가벽은 벽이 아니라 담이 된다.

한껏 열었으나 허전하지 않고, 소란한 가운데 고요할 수 있는 것은 경계를 세워 땅을 가두기보다 틀을 만들어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