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xt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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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마산의 한 건축사로부터 며칠 내로 주택설계를 의뢰하는 연락이 있을 터이니 잘 부탁한다는 전갈을 받는다. 뜻밖의 전화에 당황하여 자초지종도 확인하지 않은 채 그런가보다 한다. 일주일 뒤 마산의 M식품으로부터 한번 만났으면 한다는 부탁이 온다. 현장확인까지 해낼 작정으로 마산에서의 선보기를 제안한다. 김포와 김해를 거쳐 마산에 이르기까지 네시간여가 걸린다. 부산을 자주 왕래하고 있고 이웃한 진해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므로 낯선 곳은 아니지만 세월의 간격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에 눈길이 간다. 역 앞을 지나며 얼핏 마산성당의 자락이 보인다. 다음에 오게 되면 들러보리라 마음먹는다. 새로 지어진 시청을 처음 본다. 언젠가의 을씨년스러웠던 겨울이 떠오른다. 화물로 부쳐진 설계경기 패널을 찾아 마감시간에 맞추느라 애태웠던 씁쓸한 기억이다. 늦은 시간의 식당에서 첫인사를 나눈다. 전화한 이치규소장과 안주인을 마주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부터 묻는다. 건축주와는 친구인 이소장이 설계자로 나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인사말처럼 간단히 한다. 86년의 논현동에 만든 심현제가 힌트인 것 같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자신의 것일 수도 있는 일을 넘기려는 이소장의 속마음이 못내 궁금하다. 단순히 지역의 수준 차이로만 설명되기에는 석연치 않다. 친구의 집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직업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얼마나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반신반의 한다.
안주인의 온화한 느낌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주어 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의 집과 현장을 본 뒤 안을 만들고 그것에 합의한다면 계약을 하자는 통상적인 제안에 이소장이 흥분한다. 이 자리에서 계약을 하고 계약금이 송금된 뒤에 일을 시작하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말씀만으로도 고마우나 서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다음이라도 문제가 도지 않는다고 양해를 받는다. 이소장과는 따로 시간을 갖기로 작정한다.
현장
마산은 구마산과 신마산으로 구분되어 불린다. 마산엘 오면 항상 헷갈리는 것이 신·구의 구분이다. 신쪽이 옛스럽고 구쪽이 새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에딘버러의 뉴타운이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처럼 신마산은 식민지시기에 만들어진 도시지역이어서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당시에는 낙후지역이었던 구마산쪽이 나중에 개발되었으므로 새로운 도시처럼 보인다. 신마산쪽에는 일제의 계획도시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과거의 주거지역 모습이 새롭게 바뀌고 있으나 식민관리들의 사택과 간사 등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곳이다. 건축주가 마련한 대지에는 예 철도공사 관저였던 목조의 단층 주택이 길게 늘어서 있다. 네 채의 가구가 연속되어 있는 중에서 세 채분이 확보되어 있다. 해안에서부터 완만하게 이루어진 경사지형으로 인해 도로와는 얕은 축대로 연결된 일본식 건물들은 이미 비어있어서 앞마당과 뒷마당을 구분하는 건축의 형태만 남아 있다. 세 필지를 합하면 정방형에 가까운 모양이 될 듯한 대지는 상대적으로 주변의 규모들보다 크게 되어 서민적인 주위환경과 충돌하는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웃의 공사중인 건물에 올라 보아도 지척에 있는 바다의 존재가 쉽게 확인되지 않는다. 높게 서서 가로막고 있는 아파트와 해안 근처의 구조물들로 인해 바다는 한 조각씩의 푸른색으로 뿔뿔이 나뉘어 있다. 석탄으로 물을 데웠던 흔적인 목욕탕의 높은 굴뚝들이 도시의 풍경을 이루는 요소가 되어 기묘한 잔영을 만든다. 지방도시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곳 역시 도시의 색깔은 수성페인트의 파스텔톤과 벽돌의 붉은색으로 결정되어 있다. 미색, 옥색, 회색 등의 중성적인 색들은 이미 너무도 익숙해져 있어서 봄철의 개나리꽃과 진달래꽃이 만들어내는 원초적인 조화처럼 우리에게 일상적인 감각으로 존재한다.
설계
돌아오는 길에 대강의 윤곽을 만든다. 현장에서의 느낌과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관념들을 서로 연관시켜 몇가지의 원칙을 상상한다. 원래 있었던 집처럼 새집도 길과 나란히 모양이 된다. 길과 이웃에 대하여 겸손한 모양을 갖는다. 결코 과장된 모습을 만들지 않는다. 이미 채워져 있는 주변을 인정하고 가능한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어렴풋한 윤곽이 그려진다. 컴퓨터에 떠오른 지적도에 생각들을 정리한다. 바깥채와 안채를 만들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가운데 놓이게 될 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배치로 여러 가지의 형태가 만들어 진다. 회랑의 형식을 갖는 투명한 구조를 대입한다. 도면과 모형이 만들어진 뒤 마산으로 향한다. 이소장의 입회 아래 건축주와 의견을 나눈다. 개념에는 모두 동의한다. 다만 사랑채와 안채의 사이에 주부의 동선이 자리하기를 바란다. 회랑이 두꺼워지게 되지만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소장의 도움으로 빠른 결정이 가능하다. 설계와 감리를 계약한다.두 번째의 모형으로 모든 것이 확정된다. 집의 외부는 드라이비트를 고집한다. 완벽한 단열에 대한 기대보다 색깔로 마무리하겠다는 의도이다. 역시 이소장의 도움이 크다. 이후의 진행은 FAX로 이루어 진다. 마산의 한일건축과 인제건축사이에 글과 그림이 오가며 설계가 만들어진다. 설계자의 의도와 건축주의 요구가 중계되는 과정에서 이소장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건축주의 성격과 습성을 자세히 설명해준 FAX를 지금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소중히 보관한다는 것이 어디 두었는지 모르게 되어 공개할 수가 없다. 고마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양주를 한 병 보낸다. 좋은 설계로 보답하겠다는 명분보다 술을 즐기는 이소장에게 겨우 생색을 내었지만 나중에 안 것은 소주이어야 즐거운 취미이어서 무안해진다. 설계가 마무리되고 허가수속까지 새건축운동의 정신에 맞추어 무사히 끝난다.
감리
마산의 목수에게 집을 짓게 하겠다는 소박한 희망은 더 이상 아랫사람들을 거느리지 못하고 있는 노인들의 한숨으로 사라진다. 시공장의 물색까지 떠맡아 결국 화인건설이 내려가게 된다. 설계와 시공의 관계가 원만하게 된 만큼이나 부담이 커진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게 되어 현장으로의 발걸음이 잦아진다. 건축의 형태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수정이 이루어진다. 꼬박 하루가 소요되는 나들이지만 지속적이지 못한 감리는 한계가 있다. 과정에 대한 검토 없이 되어진 결과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일이란 서로 피곤한 일이다. 기능공과 자재의 현장연결도 매끄럽지 못하다. 화인건설의 정사장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손발에 답답해한다. 이곳 저곳에서 미처 검증되지 못한 어설픔이 보인다. 거실과 같은 높이로 맞춘 마당이 완성된다. 외부이지만 내부로 변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사랑채의 툇마루가 늘어난다. 부분적으로 시도한 노출콘크리트가 부분적인 소홀함이 흠이 되어 칠로 마감된다. 화강석과 드라이비트의 조합은 기대보다 나아 보이지만 미쳐 도면화시키지 못한 홈통의 형태가 거슬린다. 서재인 사랑채의 마당으로부터 거실의 뒷마당에 이르는 공간의 개방된 연속성을 좀 더 강조하고 싶어진다. 외벽의 색깔, 벽지의 선택, 조명 등의 선정까지 가능한 욕심을 낸다.
그러나 가구와 실내용 소품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틈틈이 스케치한 슬라이드가 상당한 양이 된다. 시공과정의 기록이 아니라 설계의 검증을 위한 작업이다. 주인의 취향에 맞추어진 조경에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싶어진다. 시간을 두고 다듬어 질것으로 기대하기로 작정한다. 마무리를 채 끝내지 못하고 이사를 든다. 집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로 번잡스럽다. 현장으로부터 빠져나와 멀리에서 집을 본다. 처음 이곳에서 꾸었던 상상과 지금 보여지고 있는 구체화된 상태가 어떤 고리로 연결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대상의 객관화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일년을 넘어 걸린 시간이 타성의 관점을 쉽게 풀어주지 않는다.
종결
건축주에게 넘겨줄 준공도면들을 정리한다. 발표할 원고용 도면과 함께 만든다. 박영채와 사진의 앵글을 잡는다. 마침 앞집의 지붕에서 마땅한 그림이 만들어진다. 마당안의 그림자가 정리되기를 기다려 장면을 고정시킨다. 실내로부터 마당을 향한 앵글이 쉽지 않다. 24㎜ 광각렌즈로도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설계의 잘못이다. 좋은 건축은 카메라를 바로 세우기만 하면 되지만 그렇지 못해 불안하다. 예정했던 느낌의 확인이 모자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버릇처럼 다음을 기약한다. 설계의 제목을 정하지 못한 것이 초조하다. 대개 설계를 시작하거나 중간단계에서 이름이 정해지곤 하였는데 이번에는 건축이 완성되도록 실마리를 잡지 못한다.
나란히 배치된 두 채의 집이거나 마당이 주제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병치된 형태가 개념적으로는 앞선다. 마당을 사이로 나란한 것은 도로와 도시와 바다와 결국 나란하고 있다. 켜를 이루며 중첩된 모습이 건축의 주변을 형성하는 형식이라면 건축자체의 중첩 또한 개념적인 요체가 된다. 켜와 켜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공간의 형식은 개체의 문제이지만 나아가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로 건축은 연속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마산성당에는 끝내 들러보지 못한다. 수십번을 지나치면서도 무엇엔가 쫓기는 사람처럼 되고 만다. 어린시절의 소풍지였던 성주사와 언젠가는 봐두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조개무덤도 찾지 못한다. 신도시 창원과 이지역 건축가들의 작업을 살펴보려던 처음의 계획 역시 다음으로 밀리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