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리 어린이집

어린이의 집 – 이리 (House for children - Iri)

몇 해전 원불교의 총부가 있는 이리를 자주 다니고 있었다. 원불교를 일으킨 중법사 소태산을 기리는 기념관을 마무리 지은 뒤 대강당의 보수를 위한 설계가 진행되고 있었다. 강남, 경주, 안암교당 등 원불교의 일을 계속하던 중에 드디어 가운데까지 들어갔던 셈이다. 정토회와 만난 것은 총부의 일들이 거의 정리될 즈음이었다. 원불교의 교직자는 남녀의 구분 없이 역할을 맡고 있으나 정녀라고 부르는 여성의 경우에는 결혼을 않지만 남성은 가족을 꾸민다. 정토회는 남성교직자들의 배우자들로 구성되어 종교활동은 물론 사회 봉사에도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단체이다. 총부와 가까운 군산쪽 국도 옆에 마련된 대지에 정토회의 회관을 설계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부터 건축이 완성되기까지 상당한 공을 들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작품으로 발표는 하지 못하였다. 건축주, 시공자와의 관계도 매우 원만하였고 설계의욕 역시 왕성하였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지금 생각해보면 정토회의 정적인 분위기에 대한 나의 접근방법이 미숙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조용히 말하고 조용히 움직이며 조용히 결정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깊이 개입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군 것이 결국 누구의 것도 아닌 결과를 만들었다. 공사가 시작되어 바쁘게 되었을 때 그러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회관의 완성을 봉축하는 자리에 초대되어서도 낯선 공간처럼 느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던 씁쓸함 이후 이리에서의 작업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이리의 경험이 거의 잊혀져 가고 있던 몇 해 뒤 정토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부지가 확장되어 회관의 일층에 있던 유치원을 독립된 건물로 키우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시 한번 설계를 부탁하고 싶다는 주관 교무의 속마음을 굳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리에서의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탁아소와 유치원을 겸한 「어린이의 집」은 회관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규모와 기능의 문제 외에는 모두 설계자에게 일임되었다. 계획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단출한 모임이 있은 뒤에 주관 교무와 설계자의 대화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회관내부의 갈등이 없지 않았을 터임에도 우리의 작업은 간섭 받지 않았다. 착공된 얼마 후 주관 교무가 자리를 옮기게 되어 관리자들과의 실랑이를 피할 수는 없었으나 처음의 골격은 유지되었다. 시간과 거리의 제약으로 충분한 현장작업을 못했지만 결과는 모두 우리의 것이 되었다.

지금 두 채의 건물은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모양으로 공존하고 있다. 서로 마주하고 있는 모습에서 동질감과 맥락의 연결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동일한 설계자에 의한 결과가 그토록 이질적일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라울 뿐이다. 회관의 주 입구에서 두 건물이 동시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외에는 하나도 위안이 되지 않는 자기부정이다. 기능이 다르다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과정의 태도가 수동적이었는가, 능동적이었는가에 의한 결과이다. 건축의 생산과정이 어떤 성격이었는가에 따라 표현이 달리 된다는 표본이 되었다. 회관의 매너리즘에 대한 반성만큼이나 「어린이의 집」에는 내용을 만들고 싶었다. 어린아이라는 대상과 교육기능을 소화하는 방법론으로 잘게 나누어진 공간을 상상하였다. 하나로 집약될 수도 있는 공간을 분화시킨 것은 대지의 여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지만 나누어진 공간요소에 의한 또 하나의 공간을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전통적 공간구성에서 보이는 채 나누기와 그것의 집합으로 가시 구성되는 전체의 구도로 주제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방법론은 지금의 방법이 된다. 가구식 구조의 한계가 동일한 형태하고 한다면 전통건축의 개념에서 형태요소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단지 공간의 영역을 구획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개별적인 형태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때 각 공간은 관계의 설정이라는 의미에 의하여 존재한다. 마당이 공간의 중심이 되는 것은 나누어진 공간을 다시 통합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설정하는 틀이 만들어졌을 때 벽은 매우 가볍게 취급될 수 있다. 중력을 받지 않는 가변성은 따라서 투명한 존재로 추상화될 수 있으므로 채와 채의 관계를 결정하는 사이의 존재 또한 상징적인 건축요소가 된다. 채움과 비움의 복합으로 이루어지는 건축에서 개별적인 요소는 전체성 또는 집합성을 위한 개체일 뿐이다. 집합적인 건축에서 형태는 실루엣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건축의 원경이 되며 접근하는 경과에 따라 공간화된다. 또 하나의 원경이 내부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어있는 마당으로 인하여 가능한 그것은 공간 속에서 다시 건축을 경험하게 한다. 나누어진 각각의 채는 다시 각각의 건축을 갖는다. 공간의 내외에서 동시에 건축이 존재할 수 있는 복합성은 형태적 요소가 배제된 건축을 자연화시킨다. 연면적 240여 평의 규모를 각각의 기능에 맞추어 나누고 마당을 중심으로 다시 모았다. 비어있는 마당은 채와 연결되는 공간이 된다. 각각의 채는 단순한 형태로 대지의 조건에 따라 자리를 잡아 무리를 만든다. 채들이 갖고 있는 색은 의미라기보다 기호에 가깝다. 어린이의 집에 어울리는 색의 요구가 있었음을 숨길 필요가 없겠으나 색의 선택은 각각의 기능을 구분하는 의도로 사용되었다. 조선 민화에서 읽을 수 있는 색의 느낌을 참조한 것으로 초록이 바탕이 되는 황, 적, 청의 조합이 되었다. 색에 의한 기호의 구성이 원초적이며 직설적인 감성교감이므로 그것이 우리의 정서를 규정짓는 근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노톤과 중간색의 세련된 조화보다 원시적이기까지 한 원색의 대비에 망설여지지 않는다. 채취된 염료의 색이 직설적으로 사용된 민화의 감성을 지금에 어떻게 접속시켜야 할지는 아직 공부가 모자란다. 당집의 모호한 어둠 속을 떠도는 원색의 신비로운 기억과 추녀 끝으로부터 지붕 속 공간으로 확산되는 영롱한 색의 의미를 확인해보기 위하여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대지위치 : 전라북도 익산시 신동
대지면적 : 6247㎡
건축면적 : 441.9㎡
연면적 :793.06㎡
규모 : 지하1층, 지상2층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용도 : 보육시설
외부마감 : 드라이비트, 아스팔트 싱글
내부마감 : 비닐시트, 페인트
건축주 : 원불교 정통회관

copyrights ⓒ archium.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